# 기고 글

문화예술계 성폭력…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

성폭력의 경험은 연결되어 있다

아주 멀리서도 들리는 목소리의 생존

성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한명, 한명의 발언이 이어지고 그녀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랜 시간 삼켜온 말의 첫 마디는 가늠할 수 없는 통곡이었고, 곧 이어 자신의 성폭력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듣는 내내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부끄럽게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성폭력이라는 말의 무게를 내 옆에 두지 못했다. 피해당사자라는 틀을 만들어두고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의 목소리가 도착한 이후, 내 안에서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꿈틀거렸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 생각에 머물지 않고,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를 더듬더듬 찾는 긴 여정을 거쳐, 아주 멀리서도 들리는 목소리의 생존.

사회적으로 공감이 부족한 영역일수록 말하는 이는 고립되고, 더 많은 싸움을 해야 한다. 성폭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인 편견을 뚫고 나오는 일이란 용기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또한 우리도, 잠재되어 있는 성폭력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네가 안전하지 못하면, 나 역시 안전하지 못해.”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울부짖음>

그래서일까? 10월 중순 트위터에서 시작된 문학, 미술, 오타쿠, 영화 등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로 올라온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나는 영화, 패션, 사진, 미술 등 문화예술 영역에서 활동해온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들이 예술현장에서 겪어야만 했던 경험들이, 내가 지난 시간 겪고 보고 들어왔던 경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장소가 어디든 성폭력의 경험은 연결된다.


예술이라는 자유롭고 숭고한 권력

▶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된 급진적 좌파페미니스트 그룹 게릴라걸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나? 현대미술 분야 3%만이 여성인 반면, 83%의 누드가 여성이다.’
트위터를 통해서 점점 번져나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경험들은 공통적인 부분들이 참 많아 보인다. 대표적으로 가해한 이와, 피해를 받은 이들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위계이다. <은교>의 박범신 작가는 방송작가 및 팬들과 동석한 자리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든 여성을 ‘늙은 은교’, 젊은 여성을 ‘젊은 은교’로 부르며 모든 여성을 자신의 ‘은교’로 호명할 수 있는 힘은 그가 중반을 넘은 남성이며, 동시에 작가로서 브랜드가 쌓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배용제 시인은 시를 가르친다는 명분으로 문하생을 자처하는 미성년자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적 발언과 추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술계 내 성폭력 사례로 일민미술관의 함영준 큐레이터 역시 대부분 이제 미술작업을 시작한 젊은 작가들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고발이 수십 건이 된다. 이쯤 되면 문화예술계 내부의 수직적인 구조가 성차별과 성폭력을 강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대학에서 예술대학은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고, 예술 장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여성작가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그럼에도 결정권을 행사하는 주요 관직, 교수, 심사위원, 관장, 대표의 기회가 누구에게 주어지는지, 누가 말할 수 있는 주체인지, 나아가서 문화예술계 안에서 여성 장애인의 비율,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의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되는지 등등. 누가 더 많은 권위를 쥐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예로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최문선,김민선)은 미술계의 네트워크와 영향력을 3차원 지도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그들은 정신없이 작업을 했지만 미술계안의 ‘보이지 않는 벽’을 계속해서 느꼈고, 그 실체를 파악하고자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네트워크 지도를 통해서 한국의 미술계가 하나의 이너서클만 강화되는 독점구조가 마치 재벌의 혼맥도(재벌이 결혼을 통해서 더 튼튼한 공동체를 만드는)와 닮아있다고 말한다.

아티스트 그룹 뮌의 작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미술계의 이러한 독점구도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너를 키워주겠다’는 달콤한 기회이자, 그 대가로서 누군가의 무릎에 앉아 내 허벅지를 내어 줘야하는 일쯤은 무감각해져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예술이라는 자유롭고 숭고한 성적 판타지는 과연 누구에게 승인되는 일인가?


문화예술계 내 가스라이팅 효과 걷어차기

이번 사례를 통해서 조명되어야 하는 부분은 여성예술가들이 자신들을 경험을 재해석하기 시작하면서, 문화예술계 내에서의 성폭력에 대해서 발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성으로서의 성적 대상화가 일상적으로 너무 만연화되었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차마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을 예민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이 발화의 시작이 문화예술계 내 가스라이팅 효과(gaslighting, 영화 <가스등>에서 유산을 노린 남편은 상황을 조작하여 아내의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정신질환자로 몰아간다.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조종하고 지배력을 행사해 결국 한 사람을 황폐화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를 과감히 걷어 차버리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계의 가스라이팅 효과는 이러하다. 이제는 운영하지 않는 한 대안공간에서 젊은 작가들이 첫 개인전이 자주 열렸다. 오프닝 현장에는 미술계 선배들이 아티스트 토크에 참석한다. 첫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긴장의 연속이지만 작가들이 곤욕을 치르는 부분은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선생과 선배들이 ‘너를 아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되는 대화는 ‘첫 전시에서는 모든 걸 다 보여주면 안 돼’, ‘작가노트는 이렇게 써야 해’, ‘좀 더 좋은 작가가 되려면…’ 등의 말로 이어진다. 작가로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주입과 세뇌를 ‘비평’이라고 말하고 작가를 ‘키우는’ 일이라고 믿는다.

 

작가가 스스로 외부성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말들, 그들이 나에게 기회를 주는 좋은 선생이라는 우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작가들을 종속시키는 방식은 언제든지 ‘남자 맛을 알아야 예술을 할 수 있다’, ‘네 몸을 바쳐서라도 기회를 만들어야지’와 같이 그녀들의 몸을 함부로 침범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화가 조지아 오키프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들은 저를 ‘최고의 여성화가’라고 가치절하하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전 ‘최고의 화가’ 중 하나예요.”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덧 씌워지는 것들, 차이를 만들어 차별화시키는 전략들을 과감히 걷어 차 버리자.

 
#부산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변화를 꾀하다

일주일 간 폭주하는 문화예술계 내 사례들은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역 문화예술계 내에는 성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주로 활동하고 있는 부산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연결하고 고민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미술작가 세 명이 모이게 되었다.

우선 문화예술계 내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그 어느 곳에서도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러한 침묵 상태에 대해 우리는 분통이 터졌다. 부산 문화예술계 내부의 좁은 관계망과 이해관계 속에서, 성폭력을 말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어느덧 우리는 감각적으로 알게 되었다.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고, 어렵더라도 외면하지 말자고, 목소리를 내자고 결의를 다졌다.

이 가난하고 연약한 세계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페이스북에 #부산문화예술계_내_성폭력(bit.ly/2fvLa0e)이라는 작은 둥지를 틀었다. 페이지의 시작은 우리의 이야기를 꺼내는 작업이었다. 각자가 경험한 부산 문화예술계 내에서의 성폭력 사례들을 다시 재해석하고 글로 옮겨보기로 했다.

멤버로 함께 하고 있는 은지씨는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희롱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전시나 레지던시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밥을 먹게 되고, 뒤풀이 자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런 자리에서 듣게 되는 말들이 자리에 동석한 여성들의 외모품평이거나 ‘여자는 여자다워야지’라는 훈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꼴렸다’는 비상식적 농담. 이런 상황들이 반복이 되면 예술 현장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 올 때가 있고,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고 했다.

또 다른 멤버인 은주씨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에 예술인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작업 활동 전반에 걸쳐 수많은 분노가 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외부적인 것으로부터 받는 분노들은 바꾸기가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민을 내면의 문제로 돌리게 된 자신을 만났다고 했다. 그 분노의 한 부분에는 미술계의 수직적인 위계 속에서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경험들이 있었다.

미술대학에 진학해 선배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결혼은 포기해야 한다’, ‘여성작가로 이슈를 만들려면 누드 작업을 해라’, ‘매니큐어를 바를 시간에 작업이나 더 해라’와 같은 말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차별의 말들이 쌓여 우리들의 뼈 속에 분노로 남아 있다.

나는 이 분노에 대해 쓰는 과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실타래들을 만났다. 나의 몸을 침범하던 ‘손’들이 여기 저기 얽혀있었다. 영화 일을 했을 때, 사진을 배웠을 때, 스타일리스트 일을 했을 때,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과 술을 마셨을 때, 내 몸과 그녀들의 몸을 희롱하는 일들은 너무 쉽게 이루어졌지만, 서로 감겨있는 나와 그녀들의 경험을 모두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다.

우리들의 말은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끊임없이 ‘다시 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스스로조차 섬세하게 쓰다듬지 못했던 경험의 조각들을 이어서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그 이후 우리들의 삶은 조금 달라져있을 것이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를 더듬더듬 찾는 긴 여정을 거쳐, 아주 멀리서도 들리는 목소리로 생존할 테니.

 
기록한다, 그리고 기억한다

어지러운 나날들 속에서 “우리는 2016년 10월 22일 이후를 기록한다”는 아카이브 페이지(ask-answer-2016.info)를 발견했다. 10월 22일은 가시화되지 않았던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피해 사례들이 수면위로 올라 온 날이다. 또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모여 봉쇄된 길을 열어 젖힌 날이기도 하다. 이 목소리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래픽 디자인 영역에서 아카이브 하는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계 내의 성폭력은 여성 한명, 한명의 경험이 쌓여 수백 건이 되어야만 문제로 인식이 된다. 그만큼 사전에 보호할 수 있는 장치들이 예술계 내에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2016년 10월 22일 이전으로 돌아가지 말자. 누군가 똑같은 싸움을 반복하게 하지 말자. 우리 한명 한명이 선례를 남기자. 이 격렬한 과정을 좀 더 나은 변화로 만들자. 2016년 10월 22일 이후의 목소리들이 남기고 있는 이 자국들을 선명하게 기억하자.

2016년 11월 7일

문화예술계 성폭력: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 속에서 대응지원으로 맞서다

2016년 00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운동은 시작되었다. 사회적인 명성을 가진 작가부터 예술계 내 공동체 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희롱, 성추행까지 장기간 동안 sns를 통해서 고발이 이어졌다. 그리고 2018년 미투 운동으로 확산되면서 문화예술계 성폭력의 심각성은 사회적인 문제로 한층 더 가시화되었다. 2016년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으로 예술가들은 성폭력 문화에 대응하는 자발적인 모임과 단체, 연대를 구성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들을 해오면서 현장에 직접 개입하고 실질적인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는 예술가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2016년부터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지원 및 고발 페이지 운영, 반성폭력 캠페인, 집담회, 정책제안 및 간담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직접적인 사건 해결에 개입하는 피해 및 대응지원 활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 해결의 어려움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사건 해결의 어려움에 앞서 문화예술계 성폭력의 유형적 특징을 먼저 알아보자

예술계에서 성폭력이 연애관계나 합의하에 관계로 교묘하게 탈바꿈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여기서 가해자들은 일종의 그루밍 성폭력 심리적으로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뢰를 쌓은 뒤에 발생하게 되는 성폭력
과 함께 가스라이팅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을 이용한다. 심리적으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뢰를 쌓은 뒤에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주로 이제 작업을 시작하는 예비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이뤄지거나 관객이나 청강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나는 너를 아낀다. 너는 특별한 존재다. 네 작업은 가능성이 있다.’ 와 같은 평가와 관심의 말들로 현혹하고 심리적인 의존 관계를 형성한 뒤, 자연스럽게 성관계 혹은 연인관계를 요구한다. 작품에 대한 평가와 관심, 피드백이 활발하지 않은 예술계에서 이런 관심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상습적이고 계획적이다. 피해자의 저항에 근거를 두고 있는 우리나라 판결기준에 따르면 이 경우, 성폭력으로 입증되기조차 어렵다. 그것을 누구보다 가해행위자들은 잘 알고 있고, 합의하에 관계라는 주장을 펼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작업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성폭력이다. 사진계에서는 로타, 영화계에서 조덕제, 김기덕, 사진 촬영회와 같은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상대방과 사전에 동의되지 않는 노출을 현장에서 무리하게 요구하고, 이를 거부할 시에 프로답지 못하다는 압박이 들어온다. 또는 피해자와 협의가 되지 않는 신체접촉을 시도하거나, 예술작업을 함께 한다는 빌미로 불러내서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추행을 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그 외에도 예술 현장에서 외모 평가와 품평, 성차별적 발언과 행동은 일상적으로 예술가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예술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가해의 수법은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폭력과 협박과 강제로 이뤄지는 성폭력이 아니다. ‘예술가가 되려면...’ ‘네가 좀 더 연기를 잘 하려면’, ‘좀 더 글을 잘 쓰려면’, ‘예술을 하려면 성적으로도 자유로워야 해’와 같이 타인의 꿈과 가치, 그리고 미래를 빌미로 이뤄진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피해를 용기 내서 말해도 침묵 또는 2차 가해로 돌아오는 예술계의 분위기는 누구도 고발할 수 없게 만든다.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특이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해행위의 그 수법이 어떤 경로와 방법을 통해서 이뤄지는지 알고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로 삼아야 한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강제적인 폭력과 협박이 주요 수단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꿈과 재능, 미래를 이용하여 성폭력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 지원의 어려움 
미투 운동을 계기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실시한 100일 신고센터, 특별조사단과 같은 임시적인 운영을 거치면서, 각 예술 분야별로 성폭력 피해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되고 있다. 부산에서도 부산시 문화예술과를 통해서 <부산문화예술계 성폭력 특별대응센터>를 임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대응’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 해결의 특수성을 담겨있다. 부산문화예술계를 피해지원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90% 정도가 사법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피해가 집중적이다. 이럴 경우 지원을 할 수 있는 영역은 상담과 의료적인 지원일 뿐 사건 해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발생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미투 이후,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자신이 피해를 말하는 동시에 가해행위자에 대한 온당한 징계나 처벌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적극적으로 사건 해결에 나선다. 그러나 이런 피해자들의 당연한 요구가 시행되지 못하는 시스템 속에서 일반적인 지원에 국한할 경우, 피해자와 이를 지원하는 활동가도 여러 어려움들을 겪게 된다. 이에 적극적인 액션을 통한 ‘대응’지원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대나무숲 운영을 비롯한 항의 방문, 면담 요청, 기자회견, 언론 보도, 관련 기관 신고, 컨설팅 요청 등과 같은 여러 활로들을 통한 방안을 찾고 있다.     

하나. 문화예술계 성폭력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
문화예술계 성폭력은 현재 법의 테두리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사안이 많지 않다. 오랜 시간 동안 성폭력을 은폐해왔던 분위기 속에서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들이 많이 있고, 문화예술계 성희롱에 관한 법안 자체가 없으며 예술인들은 고용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직장 내 성희롱의 기준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예술계 내에 존재하는 위계관계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부족하므로 법적 대응으로 갈 시,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 및 피해자가 오히려 무고로 역고소를 당할 수 있는 사안들이 많이 있다. 예술인들은 직장과 같이 고용관계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대부분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마땅한 책임을 물을 소속기관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가령 사건 해결을 위해 가해행위자를 호명한다고 하더라도 강제성도 없으며. 가해행위자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가져줄 수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법제도의 판결을 근거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해결은 현재 불가피하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문체부 성희롱. 성폭력 대책위원회의 1차 권고문에 발표되었듯이 ‘현재는 문화예술계의 성희롱. 성폭력 문제를 자율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고, 사건 해결에도 어려움이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문화예술계 내에 독자적이 고충처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모색을 해야 한다. 대응센터의 자체적인 대응에 기대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계 내의 공적인 시스템 및 기구를 연결하여 해결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시급하다고 본다.

둘. 예술대학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
부산성폭력상담소와 문화예술계 성폭력 대응센터를 통해서 신고 들어온 40%의 사건은 예술대학의 교수 성폭력 사건이다. 그리고 대부분 학교의 성평등센터나 인권센터에 신고했지만 오히려 이곳에서 2차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외부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는 경우들이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에서 예술대학 교수나 강사의 성폭력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예술계의 경우 대학과 현장은 분리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술대학 강사나 교수들은 대부분 예술 현장에서 작가나 심사, 비평을 동시에 하는 권력의 위치에 있다. 대학에서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예술 현장에 나와도 자연스럽게 가해 교수나 강사와 만나야 하는 구조를 뛴다. 그러나 대부분 대학에서 성폭력 문제로 징계를 받은 교수들의 징계 내용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예술계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

반대로 예술 현장에서 성폭력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도 어떤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대학에서 강사나 교수로 활동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이런 구조는 피해자들에게는 침묵 속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지만, 가해자들에게는 지속적인 성폭력을 해도 무방한 조건이 형성된다. 이런 허점들을 가해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동안 어떠한 제재도 받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셋. 가해자 한 사람과 여러 명의 피해자
예술계 내의 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깊고도 촘촘하다. 프리랜서의 형태로 작업을 하는 예술계가 자유롭고 자율적인 환경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예술계 내의 피해사례들을 살펴보면 보이지 않는 권력이 어떻게 폭력이 되는지 알려주고 있다. 예술계는 예고나 대학, 학원, 문하생의 개념으로 선생과 교수를 통해서 예술을 배우는 개념 또는 도제 시스템 통해서 예술적 역량을 키워나가는 방식의 관계적 특수성이 있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예술가들은 재능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혹은 평생 기량을 닦고 연마해야 한다. 반드시 예술가가 되어 예술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와 자신의 분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있다. 특히 클래식음악, 국악, 무용, 순수미술은 어렸을 때부터 학습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연예인 사업이 대형 시장화 되면서 청소년 연습생으로 경력을 시작하는 경우도 흔해지고 있다. 또한 예술 고등학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로 문학이나 애니메이션, 디자인, 연기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청소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한국여성인권진흥원,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자 지원 가이드라인]
 예술계에서 한 사람이 쌓는 명성과 지위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는 구조이다. 작가, 대학의 강사와 교수, 심사위원, 자문위원, 협회 대표, 해외 진출 등 광범위한 지위와 역할이 주어진다. 그렇다 보면 그 이름 자체가 어느새 예술계에서 거역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 있다. 예술계는 인맥과 네트워크가 예술 활동이나 작업의 기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외부적으로는 강제성이나 위력이 없어 보이는 문화예술계 성폭력은 이 구조 내의 권력관계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이런 힘의 관계 속에서 가해자뿐만 아니라 주변의 침묵과 동조, 공모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술계의 이윤택, 김기덕, 조재현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힘이 있는 예술가 한 명이 저지르는 성폭력은 지속적이며 여러 명의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계의 구조적 상황에서 이와 같이 여러 명의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증거 위주의 조사와 공소시효라는 제한을 통해서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솜방망이 처벌로 그치게 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넷. 문화예술계 내에서 가해행위자에 대한 제제의 필요성
문화예술계에서 성폭력을 제재할 수 있는 법과 제도는 전무하다. 이런 사각지대 속에서 가해행위자들은 잘못을 해도 예술계 내에서 어떠한 제재나 배제를 받지 않았다. 문화예술계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예술 보조금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작업을 해나가고 있고, 이윤택과 고은 시인 역시 국가의 지원금을 통해서 자신의 예술적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러므로 문화예술계 내에서 가해행위자에 대한 지원금 배제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응센터를 통해서 들어온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지역문화재단과 부산시에서 보조금을 받거나 예술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인이라면 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예술대학에서 조사와 징계위원회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징계를 받는 가해자들이 예술 현장의 심사나 지원을 받지 아니하도록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폭력 가해를 행하였을 시 예술계 내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줌으로서 실효성이 있고 사건 해결에도 중요한 열쇠가 된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해결에 있어서 예술계 내 구조 안에서 가해자를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피해지원 및 대응 시에도 이를 적극 이용하여 문제의 해결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 사건 해결 과정에서 문화예술계 내에 책임을 묻기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 해결에 있어서 어려운 지점의 또 다른 축은 가해자가 속한 예술조직이나 예술 협회 등의 운영위와 대표들이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이다. 대부분의 조직이나 협회는 성폭력에 대한 규정이나 대응 매뉴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조직 내 가해자에 대한 조사와 사건 해결을 전문가와 상의하여 진행하기보다, 사건 해결을 방해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피해자를 더욱 고통에 몰아넣는다. 참고로 스웨덴 영화계 미투 운동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실명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개인이 공격당하지 않는 구도를 만들고 실제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할 협회와 법과 제도가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안전을 우선시하면 안전지대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예술계의 구조적 문제이고, 공동체의 문제임에도 피해자 개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정부와 시에서 적극적으로 법과 체계를 만들고 예술계 조직과 공동체에 사건을 해결할 의무적인 책임이 있음을 명시해야 한다. 

부산문화예술계 성폭력 특별대응센터에서 진행한 대응지원의 특징들을 통해서 문화예술계 성폭력의 특성을 녹아내려고 하였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특성과 구조를 바탕으로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상담은 이루어져야 하며, 지원의 방식 또한 예술계 내에 문제를 묻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자들 중에서 일반상담소를 찾아서 상담을 받을 경우, 자신의 경험을 이해받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제보를 많이 받았다. 이러한 증상은 상담사가 문화예술계의 분위기와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문화예술계는 다양한 분야가 존재하고 분야마다 조금씩 다른 성폭력 유형을 띄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보았을 때 보다 전문적인 상담과 지원이 필요하다. 예술계 미투는 법과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문화예술계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피해자들 개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구조였다. 미투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전담할 수 있는 기구가 존재해야 하며, 그 기구를 통한 법과 제도적 정비, 피해지원에 대한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이러한 대책이 지금부터 마련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감행하면서 고발하는 미투는 반복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에 맞서는 탐정의 시간

우리는 스스로를 ‘탐정’이라고 부른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해결을 위해 움직이는 예술인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나는 2016년 10월부터 2018년 현재까지 탐정 중 한 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탐정이 되기 전 나는 느릿느릿하지만 분명한 태도로 미술 작업을 해나갔었다. 하지만 예술계 성폭력 해결이라는 강도 높은 활동을 하게 되면서 작업을 하는 예술가로서의 시간은 좀처럼 내기가 어려웠다. 왜 예술가들은 탐정이 되어야만 했을까.

2016년 10월이었다. OO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문화예술계 전반에 성폭력 피해 고발운동이 급속도로 번져갔다. 강제적이고 수위가 높은 폭력만이 성폭력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서 드러난 고발의 대부분은 예술 활동 곳곳에 공기처럼 존재했던 성희롱과 성추행에 대한 고발이었다. 누군가 운이 없어서 당한 일이 아니라, 예술계라는 구조에서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었고 안전하게 털어놓을 곳이 없었으며, 해결할 곳도 없었다. 그저 피해를 입은 예술가 개개인이 예술계에서 멀어지거나, 침묵 속에서 작업을 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동안 문화예술계에서 성에 대한 문제는 폭력이나 범죄라고 인식되기보다는 개개인들의 자유로운 성적 일탈 혹은 예술가의 기행쯤으로 가볍게 여겨져 왔다. 좀 더 과장하자면 성적 일탈과 자유가 일종의 ‘예술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문화예술계 성희롱,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예술계 특유의 분위기가 성폭력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예술가들은 답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폭력의 행위자가 문제라는 인식보다는, 가볍게 웃어넘기지 못하고 불편해하는 이들이 유별난 사람이 되고,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히기 쉬운 분위기였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의 의미는 폭로에서 그치지 않았다. 성폭력을 쉬쉬하는 문화는 이제 멈추어야 하고, 반성과 성찰을 통해서 예술계가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요청의 의미가 담겨있다. 더불어 예술작품 속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의 문제, 그 작품들이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고 대중적 문화로 확산되는 것이 온당한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예술가들은 의문을 표했다. 

문화예술계에서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sns를 중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 중 하나는 예술계 내에 성폭력을 신고하고 피해를 지원하고, 가해행위자를 제재할 수 있는 법과 제도적 장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점을 자각한 예술인들은 제도적인 해결을 요청하기 위해서 예술가들로 결성된 연대조직 <여성문화예술연합>을 통해서 문화예술계 성폭력 해결을 위한 정책제안서를 제출하였다. 예술계 성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 문체부가 적극 나설 것을 요청하였지만 문체부는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기적같이 미투의 물결이 일어났고 연극계, 영화계 등에서 권위를 가진 예술가들에 대한 고발이 멈추지 않았다. 해시태그로 시작해서 미투로 이어지는 예술계 성폭력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예술계 내 성폭력이 어떤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 민낯은 좀 더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었다. 

하나, 예술계 내의 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깊고도 촘촘하다. 예술계는 일반 직장처럼 고용관계로 이루어지지 않고 직위나 계급이 가시화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예술계가 자유롭고 자율적인 환경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예술계 내의 미투 고발의 많은 피해 사례들은 보이지 않는 권력이 어떻게 폭력이 되는지 알려주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술계는 예고나 대학, 학원, 문하생의 개념으로 선생과 교수를 통해서 예술을 배우는 개념 또는 도제 시스템 통해서 예술적 역량을 키워나가는 방식의 관계적 특수성이 있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예술가들은 재능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혹은 
평생 기량을 닦고 연마해야 한다. 반드시 예술가가 되어 예술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와 자신의 분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있다. 특히 클래식음악, 국악, 
무용, 순수미술은 어렸을 때부터 학습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연예인 사업이 대형 시장화 되면서 청소년 연습생으로 경력을 시작하는 
경우도 흔해지고 있다. 또한 예술 고등학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로 문학이나 
애니메이션, 디자인, 연기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청소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자 지원 가이드라인

예술계에서 한 사람이 쌓는 명성과 지위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는 구조이다. 작가, 대학의 강사와 교수, 심사위원, 자문위원, 협회 대표, 해외 진출 등 광범위한 지위와 역할이 주어진다. 그렇다 보면 그 이름 자체가 어느새 예술계에서 거역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 있다. 예술계는 인맥과 네트워크가 예술 활동이나 작업의 기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힘의 관계 속에서 가해자뿐만 아니라 주변의 침묵과 동조, 공모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선생과 선배라는 특정한 그룹으로 엮이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예술 영역 역시 예술가 한 사람의 권력과 파워가 존재하며,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가해행위자가 징계를 받는다 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언제든 옮겨갈 수 있기 때문에 활동에 큰 지장이 없다는 점에서 처벌 역시 어렵다.

둘, 예술계에서 성폭력이 연애관계나 합의하에 관계로 교묘하게 탈바꿈되는 경우이다. 여기서 가해자들은 일종의 그루밍 성폭력 심리적으로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뢰를 쌓은 뒤에 발생하게 되는 성폭력
과 함께 가스라이팅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을 이용한다. 심리적으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뢰를 쌓은 뒤에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주로 이제 작업을 시작하는 예비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이뤄지거나 관객이나 청강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나는 너를 아낀다. 너는 특별한 존재다. 네 작업은 가능성이 있다.’ 와 같은 평가와 관심의 말들로 현혹하고 심리적인 의존 관계를 형성한 뒤, 자연스럽게 성관계 혹은 연인관계를 요구한다. 작품에 대한 평가와 관심, 피드백이 활발하지 않은 예술계에서 이런 관심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상습적이고 계획적이다. 피해자의 저항에 근거를 두고 있는 우리나라 판결기준에 따르면 이 경우, 성폭력으로 입증되기조차 어렵다. 그것을 누구보다 가해행위자들은 잘 알고 있고, 합의하에 관계라는 주장을 펼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셋. 예술작업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성폭력이다. 사진계에서는 로타, 영화계에서 조덕제, 김기덕, 사진 촬영회와 같은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상대방과 사전에 동의되지 않는 노출을 현장에서 무리하게 요구하고, 이를 거부할 시에 프로답지 못하다는 압박이 들어온다. 또는 피해자와 협의가 되지 않는 신체접촉을 시도하거나, 예술작업을 함께 한다는 빌미로 불러내서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추행을 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그 외에도 예술 현장에서 외모 평가와 품평, 성차별적 발언과 행동은 일상적으로 예술가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예술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가해의 수법은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폭력과 협박과 강제로 이뤄지는 성폭력이 아니다. ‘예술가가 되려면...’ ‘네가 좀 더 연기를 잘 하려면’, ‘좀 더 글을 잘 쓰려면’, ‘예술을 하려면 성적으로도 자유로워야 해’와 같이 타인의 꿈과 가치, 그리고 미래를 빌미로 이뤄진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피해를 용기 내서 말해도 침묵 또는 2차 가해로 돌아오는 예술계의 분위기는 누구도 고발할 수 없게 만든다.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특이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피해자에게 잘못을 물을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물어야 하며, 가해행위의 그 수법이 어떤 경로와 방법을 통해서 이뤄지는지 알고 이를 재재할 수 있는 근거로 삼아야 한다.

부산은 예술인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개입으로 현재 2018년 7월에서 10월까지 부산문화예술계 성폭력 특별대응센터를 운영 중에 있고, 피해상담 및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술계 내에 성폭력의 심각성이 사회적인 문제로 드러났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으로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것까지는 도달했지만, 피해에 대한 예술계 내에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 치명적인 문제이다. 예술계 미투가 일어나면서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서 접수된 예술계 피해 중 90%는 법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성폭력 피해이다.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 성희롱의 경우, 예술계 내 위력에 의한 성폭력 경우, 진술은 명확하지만 물증이나 증인이 없는 경우 등이 대부분이다. 이런 피해를 기존의 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계 내에 법과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서 가해행위자에 대한 징계나 배제 및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당장 시행되어야 한다.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 그리고 각 예술협회 및 단체에서는 가해행위자에 대한 배제 근거조항을 형법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예술계 성폭력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근거를 정립해야 한다. 그 방안이 미약하게나마 예술계에서 부당한 피해를 줄이고, 피해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지금의 예술계 성폭력 해결을 위해 내놓은 방안은 가해행위자에게 오히려 더 좋은 환경과 근거를 마련해줄 뿐이다. 누구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것인가.

지금까지 써 내려간 모든 정보와 지식, 연구들은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곳곳의 탐정들이 예술 활동을 중단하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분석, 연구하고, 직접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서 현장을 뛰고, 정책을 만들어내는 노동을 통해서 나온 결과이다. 예술계 미투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명확한 해답과 책임을 회피한 채 방관하던 자리를 결국은 예술가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탐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예술계 성폭력을 해결할 주체는 탐정이 아니라 예술계 내의 특수성이 반영된 올바른 법과 제도가 그 역할을 해야 하며, 정부와 문체부, 각 지역의 지방자치단체 및 문화재단, 협회들이 만들어나가야 할 미래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는 미투의 목격자이다. 우리 안에 있는 목격자의 말과 힘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